4월 봄이되면 반드시 봐야할 영화. 4월 이야기(四月物語, April Story, 1998)

영화 <4월 이야기>는 무언가를 시작하는 스무 살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갓 스물이 된, 아가씨라기보다는 아직 소녀에 가까운 대학 신입생 우즈키다. 무사시노 미대에 입학하기 위해 고향인 홋카이도를 떠나 혼자 도쿄에 왔다.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고 미숙하지만 그녀는 늘 두근거리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녀를 보며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되는 건 우리도 한때 그런 ‘진짜 봄’을 지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우즈키의 하루하루는 조용한 좌충우돌의 연속이다. 새로 사귄 괴짜 친구를 따라 플라잉 낚시 동아리에 가입해 벌판의 허공에다 낚싯대를 드리우기도 하고, 혼자 만든 카레가 너무 많다고 생각해 이웃에게 나눠주려다 거절당하기도 하고, 아마도 처음으로 혼자서 갔을 영화관에서 지루한 사무라이 영화를 오랫동안 가만히 관람하기도 한다. 허공의 물고기를 낚으며 흘려보내버려도 되는 시간, 흔쾌히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은 스무 살 무렵뿐인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그녀가 머나먼 도쿄까지 유학 온 것도, 하필이면 무사시노 대학에 진학한 것도 특별한 이유 때문이다. 몰래 짝사랑하던 고등학교 때의 선배가 바로 그 대학에 갔다는 얘기를 듣고 거기까지 따라온 것이다. 인생 전체를 뒤바꿀 중요한 선택을 그런 황당하고 사소한 이유로 결정하는 것도 그 나이만의 만용 혹은 특권이다.



4월은, 3월과는 또 조금 다른 시간이다. 봄은 더 깊었고 낮 햇살은 완연히 따사롭다. 낯설기만 하던 캠퍼스도 어느새 눈에 익었다. 그 어느 날, 우즈키는 용기를 낸다. 야마자키 선배가 아르바이트하는 서점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선배가 “혹시?” 하고 말을 걸어올 때 그녀의 얼굴은 발그레하게 달아오른다. 거리에는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그가 빌려주는 빨간 우산을 손에 들고서 그녀는 몇 번이나 되뇐다. “꼭 돌려 드리러 올게요.” 영화는 거기서 끝난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즈키가 나중에 우산을 돌려주러 왔는지, 그녀의 설레는 짝사랑은 이루어졌는지, 궁금하지 않다. 우즈키와 야마자키가 첫사랑을 시작했는지, 그 사랑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둘이 진짜로 사랑을 시작했다면, 그건 나도 당신도 모두 충분히 예측 가능한 평범한 청춘물이 될 테니까. 그 끝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갈림길일 것이다. 청춘은 조금씩 시들어가고 풋풋하던 모든 사랑은 생로병사를 따라 지는 법이니까. 이 영화에 유일한 남자 주인공인 야마자키가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우즈키도 실은 그가 누구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내게 묻는다면, 그들의 사랑에 반대한다고 대답하겠다. 소녀의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첫사랑 선배는, 다만 그 환상 속에만 머무는 편이 적절하다. 봄날의 환상보다 아름답고 소중한 건 우리 인생에 별로 없을지도 모르니까.

블라인드 사이드 The Blind Side, 2009

2009년 프로미식축구 리그 NFL 1차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어 5년 동안 1,380만 달러 (약157억훈훈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블라인드 사이드>는 약물중독으로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사는 '마이클 오어'가 한 가정을 만나면서 새롭게 변화해가는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반팔 티셔츠를 입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리 앤'은 그를 위해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옷과 음식까지 물심양면 지원하게 되죠. 결국 아들로 삼아버리는데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이클 오어'는 인종으로 따지면 흑인이고 '투오이'가정은 백인입니다. 그것도 그냥 백인이 아닌 남부러울 것 없는 중상층(혹은 그 이상도 되어 보이긴 하지만) 입니다.

영화에서 가족 사진

실제 가족 사진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이 있는 가족이 새로이 자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별 문제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류층일수록 보수적 성향이 강한 곳이 미국입니다. 아니 미국만 그런건 아니겠죠. 어쨌든 그런 보수적 성향이 있는 백인 집안에서 흑인, 그것도 집도 절도 없으며 어머니는 약물 중독에 머리가 우수한 것도 아닌 흑인 아이를 아무런 댓가없이 아들로 입양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가장 충격적(?) 장면입니다.

물론 우리에겐 똑같은 외국인이겠지만 당사자인 자기네들이 본다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투오이'가족이 달리 보이겠죠.

이 영화는 흑인과 백인이라는 인종적 이야기 뿐만 아니라 미식축구와 미국내 할렘가 등과 같이 상당히 미국적인 이야기로 똘똘 뭉친 영화입니다. 초반부터 미식축구에 대한 이야기와 '로렌스 테일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로렌스 테일러'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우리에겐 검색창으로 검색해봐야 하는 인물이죠. 특히 '마이클'을 위한 가정교사 또한 자신이 민주당원이라고 하는데 이 말도 우리에겐 어리둥절 하게 만드는 대사입니다. 그 외에도 미국에 대한 역사나 기본 정보가 없다면 상당히 괴리감이 느껴질 영화입니다. 아니 괴리감보다는 이해하기가 좀 힘들겠죠.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그다지 문제될 사항은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따로 있으니깐요. 미국이나 한국이나 혹은 다른 나라도 그렇고 보편적으로 가족이라는 구성원은 따뜻함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니 굳이 이해하고 못하고 할 것도 없는 셈인거죠.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다지 큰 사건이나 위기가 없습니다. 그냥 물 흘러가듯 잘 흘러갈 뿐이고, '투오이'가족은 완벽한 가족상을 보여줍니다. 무엇하나 삐뚤어진 것 하나 없는 완벽한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달리 보면 허구적인 가상의 가족 같다는 생각 뿐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완벽한 가족이 실제 한다는 이야기인 셈이고, 큰 사건없이 가족들이 '마이클'을 바라보며 잘 살아왔다는 뜻이겠죠. 믿기 힘든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엔딩크레딧의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눈물을 쥐어 짜게 만들거나 감정을 자극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애시당초 그렇게 할 생각도 없어 보이기도 하고요. 그냥 '마이클 오어'라는 존재의 변화에 대해 초점을 맞춘 듯한 영화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캐릭터간의 감정선에는 큰 힘이 작용되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리 앤'이 '마이클'을 만나면서 변화되는 감정이나 결정적으로 아들로 삼고 싶다는 마음 따위는 없습니다. 특히 딸인 '콜린스'는 주변의 수근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클'에게 다가가는데 별 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결국 이러한 모든 것들은 엔딩을 통해서 실화를 강조하고(실화이니 별 다른 설명이 필요없다는 뜻이죠),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진짜구나라는 감탄과 감동을 전합니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갈 때서야 관객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흔들어 두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평이하게 흘러갑니다. 여기에 '산드라 블록'은 평이함을 조금 더 색다르게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한 몫 단단히 합니다. 여우주연상 수상이 의심스럽지 않게 말이죠.



영화의 제목인 '블라인드 사이드(The Blind Side)'라는 뜻은 쿼터백이 감지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뜻합니다. 이 사각지대를 '마이클 오어'가 지켜내는 거죠. 그 전에 가족들이 '마이클'을 지켜주고요.

가족이란 서로의 사각지대를 지켜줌으로서 더욱 튼실한 팀이 되는거죠. 미식축구를 가족과 연결한다는 점도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영화를 보면서 가족이란 아주 중요한 존재이고, 선행을 실천하는 데에는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영화입니다. 그것도 미식축구를 통해서 말이죠.

심호흡이 필요하다 (심호흡이 필요해 2004, 深呼吸の必要, Shinkokyu no hitsuyo, Breathe In Breathe Out)

오키나와의 사탕수수 밭, 자신의 삶에서 조금은 떨어져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필요한 청춘들이 은둔을 겸한 외유를 위해 모여든다.
늦봄에서 여름까지 사탕수수밭에서 사탕수수를 거두는 노동에 참여하는 것.
과한 노동은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할 수 있다는 삶의 철학이 영화의 주된 분위기를 좌지우지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소아과를 신청했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생명을 잃는 아이들에 대한 괴로움을 안고 있는 의사,
아버지에게 허락받지 못한 아이를 임신한 간호사, 지지리 실력이 없다고 스스로를 단죄해 버린 야구선수,
너무 어린 나이에 삶을 접어버릴 생각을 했던 소녀...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찾고자 하는
많은 청춘들이 낯선 오키나와의 섬으로 모여든다.





처음엔 노동이라는 것을 감당할 수도 없을 만큼 나약한 육체와 정신력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서로에게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삶 자체에 여유를 가지게 되면서 사탕수수를 베는 기술이 늘 듯...
이들 사이엔 협동심과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생긴다. 본인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
모든 인생에는 심호흡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영화는 조용한 어조로 나즈막하게 알려주는 것 같다.





너무 더워서 피하고 싶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생소해서 또 불편했던 이들에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친밀감 만큼이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밭에 있는 사탕수수를 다 캐겠다는 의지도 커지고...
한동안 스스로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마음에는 자연스러운 치유가 일어난다.
물론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이들의 과다한 노동이 주는 미학은 실제 과한 노동을 통해서 삶에 대한 애착을 느껴 본 이들에겐 실로 이해하기 쉬운 설정이다.
몸이 너무 힘이 들 때는 그저 내 몸에 휴식을 주고 싶다는 목적만이 생기고, 그런 원초적인 자기애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치유까지 가능하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배부른 자들의 잠깐의 외유하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과정조차 없는 이들의 청춘이란 얼마나 나약하고 획일 적인가!
낯선 자기의 삶을 떠나 새로운 경험을 해 본다는 것..그것이야 말로 청춘이 가진 가장 값진 키가 아닐까.
그 청춘엔 미처 모르는 인생의 묘미를 영화는 숨기듯 숨기지 않듯 보여준다.





<참고사항>
시노하라 테츠오 감독이 다음 세대를 노리는 유망한 젊은 배우 7명을 모아서 만든 마음이 따뜻해 지는 청춘드라마.


본작품으로 데뷰하여 시노하라 감독의 차기작인 <천국의 책방>에도 출연하는 가오리 리나의 매력과 <아즈미>에서 열연한 나리미야 등의 연기가 눈에 띈다.
도회지로부터 온 유약한 젊은이들이 오키나와의 대자연과 섬 사람들의 온정을 만나면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뷰티풀 마인드 (A Beautiful Mind, 2001)


40년대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이는 프린스턴 대학원.
 

시험도 보지 않고 장학생으로 입학한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의 한 천재가 캠퍼스를 술렁이게 만든다. 너무도 내성적이라 무뚝뚝해 보이고, 오만이라 할 정도로 자기 확신에 차 있는 수학과 새내기 존 내쉬.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뛰어난 두뇌와 수려한 용모를 지녔지만 괴짜 천재인 그는 기숙사 유리창을 노트 삼아 단 하나의 문제에 매달린다. 바로 자신만의 '오리지날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 어느 날 짖궂은 친구들과 함께 들른 술집에서 금발 미녀를 둘러싸고 벌이는 친구들의 경쟁을 지켜보던 존 내쉬는 섬광같은 직관으로 '균형이론'의 단서를 발견한다. 1949년 27쪽 짜리 논문을 발표한 20살의 청년 존 내쉬는 하루 아침에 학계의 스타로, 제2의 아인슈타인으로 떠오른다.
 

이후 MIT 교수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정부 비밀요원 윌리암 파처를 만나 냉전시대 최고의 엘리트들이 그러하듯 소련의 암호 해독 프로젝트에 비밀리에 투입된다. 하지만 정작 그를 당황케 한 것은 몇 만개의 암호가 아닌 사랑이란 인생의 난제였다.
 

자신의 수업을 듣던 물리학도 알리샤와 사랑에 빠진 그는 난생처음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둘은 행복한 결혼에 골인한다. 알리샤와의 결혼 후에도 존은 윌리암과의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수행한다. 하지만 점점 소련 스파이가 자신을 미행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존. 목숨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아내에게 끝까지 자신의 일을 비밀로 하지만, 자신의 영혼의 빛이 점점 꺼져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데.
 

{내쉬의 이론(Nash's theories)은 세계 무역 협상, 국가노동관계 그리고 심지어 생물진화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존(John)과 엘리사(Alicia)는 뉴저지의 프린스턴(Princeton, New Jersey)에 살고 있으며 수학과(the Mathematics Department)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존은 아직도 매일 캠퍼스를 걸어서 다니고 있다.}